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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어느 법학도의 이야기 #1

<<법조타운 조성사업에 대하여 거창 군수님과 공무원분들께 드리는 글>>


안양교도소, 창원교도소, 전주교도소, 원주교도소, 대전교도소 

모두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끊임없이 이전을 요구하는 곳들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 하나 이전은 쉽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곳들만을 적시한 것이고, 

교도소가 위치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민들의 크고 작은 이전 요구가 있습니다.


교도소(또는 *구치소)는 틀림없는 기피시설입니다. 

어떤 근거와 그럴듯한 통계자료를 가져와서 꾸며본들 

지역민은 고통을 호소합니다.  

(*거창구치소는 기결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편의상 이하 교도소로 통칭하겠습니다.)


개중에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교도소 추가 유치를 희망하는 청송군의 소식이었습니다.


관련 내용을 계속 찾다보니 납득이 갔습니다. 

인구증가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들어와서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창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기존 청송교도소의 이미지가 굳어져서 

인구의 순유입이 끊기고

자생적으로 경제가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더 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흡사

약에 의지하며 점점 더 강한 약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환자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수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거창은 200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귀농 귀촌 인구가 1,292명으로 도내 18개 시ㆍ군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11월 한 달간 

거창으로 유입된 인구는 216명으로

전입과 전출을 상계했을 때 작년 대비 한 해 126명의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거창 교도소로 유입되는 교도관의 수 200여명은 

거창의 11월 한 달간 유입 인구에도 못 미칩니다. 


교도관 가족 모두가 

기존의 학교와 직장을 전부 포기하고 거창으로 전입한다 하더라도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줄 만한 비중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창 같은 소도시에 교도소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귀농인구가 감소하고 

수년 후에는 인구의 순유입 자체가 끊겨 

지역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조금씩 혈액이 돌기 시작한 발에 

잠깐 한기를 없애려고 오줌을 눈다면 

발은 결국 얼어붙게 될 겁니다. 


이미 여러 개의 교도소를 갖고 있는 청송은 

교도관의 수가 거창 교도소의 몇 배에 달합니다. 


그럼 경제상황이 아주 좋아야 함에도 

인구의 순 유입이 끊겨 다시 교도소 추가 유치를 희망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교도소는 

자생적 인구 유입의 가능성이 없거나,

교도소 유치로 지역 이미지의 타격이 없는 

대도시의 경우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의제입니다.


교도소가 들어오면 지역경제가 살 것이라는 주장은 

언 발에 오줌을 누면 발이 따뜻해질 거라는 주장과 같습니다. 


지역경제는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곳이 되어야 살아납니다. 


군 지역임에도 오히려 인구가 늘고 있는 거창은 

어떤 정책을 집행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가 

얼마든지 가능한 곳입니다.


군수님은 지금,

그런 곳에 교도소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충분히 자생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을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 고향 거창의 소식을 ‘교도소 유치’, ‘법조타운 건립’의 이름으로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접하고 

유치의 근거와 사업진행의 추이를 알아봤습니다. 


정작 거창에서 살아갈 사람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이 일을 

상당기간 거창 사람이 아니었거나

언제든 거창을 떠날 수 있는 분들이 나서서 

절차를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방폐장이든 원자력발전소든 교도소든 

그곳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갈 사람들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 유치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게 님비(NIMBY)든 핌피(PIMFY)든 

지역사회의 일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뜻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국가전체의 이익이나 정책적 고려에 따른 조율은 

주민의 의견수렴 이후에 오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주민의 의견이라고 올린 유치서명부가 날조됐더군요. 

더 가관인 것은 거창군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명부가 법적요건이 아니다.” 이게 요지였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서울시나 다른 광역시에서 일어났다면 

이런 변명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법적요건이 아니라는 것은 “유치를 위한” 요건이 아닌 거지, 

날조행위의 위법성 조각사유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해서 문제가 됐을 때 

“내 거짓말이, 그 상황에서 꼭 필요한 거짓말은 아니었다.”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되는 변명입니까?


거창군민은 군수님께 그 “법적요건도 아닌 서명부”를 

왜 날조까지 해 가며 작성했냐고 묻는 겁니다.


군민 47%에 달하는 29800여명의 서명은 

법무부에서 교도소 유치 결정을 내리는 데 적지 않은 이유였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29800여개의 서명을 받을 필요도 없었겠죠.


설사 서명부가 유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적인 기관에서 공무를 집행하며 개인의 명의를 도용해서 서명하고 

그것을 공무를 집행하는 근거로 썼는데

그 목적물이 법적요건이 아니라는 변명만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양보해서, 

날조행위가 공문서위조의 법적인 문제를 피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럼 군수님의 책임은 없어집니까? 

법적책임이 없으면 정치적 책임도 없습니까? 

이제 선거가 없어서 군민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겁니까?


군수님은 군민의 선거를 통해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입니다. 

선출직 공무원인 군수님은 

정치적 행위를 통해 그 자리에 오르신 겁니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제일 먼저 군수님이 해야 할 행동은 "사과"였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진짜 의견”을 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군에서는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의 의견을 물을 생각은 하지 않고

민간단체에 의해 이뤄진 여론조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이 이뤄진 여론조사라서 잘못됐다”는 말만 하고 있더군요.


사업의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그 일을 집행하는 쪽에서 해야 합니다. 


교도소 유치의 공무를 집행하는 쪽은 

민간단체가 아니라 군청입니다.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잘못된 조사였다면, 

그 “충분한 설명”을 통한 의견수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의 귀결입니다.


방폐장 유치를 주민투표에 부쳤던 타 지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번 사안은 주민투표를 발의하기에 충분한 의제입니다.


반대와 찬성 측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주민투표를 직권 발의해 주십시오.


지금 저는, 

거창군민이 살아갈 곳에 대한 결정을  

거창군민이 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서명부를 날조한 것에 대한 상식적인 후속조처로서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선거를 통해 허락을 받았다’는 항변을 하시는데, 

군수님은 교도소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법조타운을 말씀하셨죠.


이 사안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들은 얘기는 하나같이 

법조타운이 교도소인 줄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거창에는 거창지원과 지청, 보호관찰소가 있고 

유치하는 건 교도소뿐입니다.


그걸 법조타운 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홍보했다는 것부터가 

주민의 반대를 예상하고 오해를 의도한 것은 아닙니까? 


우리 법에서는 

부동산이나 증권, 보험 상품하나를 계약할 때도 

설명의무라는 것을 규정하고 

오해할 만한 설명으로 이뤄진 계약이라면 

손해배상의 근거로 삼거나 이를 해지 또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 


민사상 거래에 있어서도 설명의무 또는 고지의무를 두고 

취소사유로 까지 삼는데


거창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부족해서 다수가 오해하고 있다면, 


다시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사 교도소 유치의 내용을 

군민들 모두가 명백히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 

대운하사업을 반대한 것처럼


이홍기 후보님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홍기 군수님의 교도소 유치 정책은 반대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군민이 바라는 사업을, 

10~20% 정도의 군민만이 반대하는 것 같다’고 “추정”하면서


그 “추정”을 근거로 

군의 최대 사업을 진행할 게 아니라


그 “추정”이 사실인지, 반대하는 군민이 얼마나 되는지 

법에서 정한 절차를 통해 주민의 의견을 물어주십시오.


200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7년 수형자 재입소율(재범률)은 52.3%에 이르고


1998년 이후 2008년까지 

출소자 재범률은 꾸준히 50% 이상을 유지합니다. 


2009년까지 4년간 강력범의 재범률은 

78.9%에 달한다고 합니다.


재범률이라는 것이 출소 후 수년간의 경과기간을 요하기에 

극히 최근의 자료는 알기 힘들지만 


형사정책을 공부할 때 교수님들은 

일반적으로 재범률을 50% 정도로 놓고 논의를 합니다. 


거창 같이 작은 지역에 

재범률 50%의 전과자들이 출소하여


그 중 갈 곳 없는 일부 전과자들이 

이곳 거창에 정착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밤에 마음 놓고 강변을 산책할 수 있겠습니까?

내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혼자 걸어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출소자로 인한 범죄율이 

몇 년 새 갑자기 증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정착하는 출소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불안감의 증대는 

거창을 밤을 더 한적하게 만들 겁니다. 


반대하는 분들은,

반대의 주장이 관철된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습니다.


토지보상, 공사입찰 등과 같은 금전적 이익과 연계되지 않았기에 

순수하게 거창의 미래만 생각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교도소 유치에 반대하는 분들은,

그냥 범죄 없는 거창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밤에 무서워하지 않고 

강변에서 운동하고 싶은 겁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불안해하지 않고 생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겁니다.


사과가 맛있는 교육도시 거창이, 

많은 사람들이 귀촌을 희망하는 예쁜 도시로 남았으면 하는 겁니다. 


끝으로 공무원분들께 호소 드립니다.


공무원분들 역시 

거창에서 살아가셔야 할 거창군민이기에  


여러분의 삶의 터전에 교도소가 들어오고

또 그런 일이 비상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분들이 있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공적사업에 대한 정보공개가 일상화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여러분의 생각과 일반 군민들의 생각이 

많이 다르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군수님께서 이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시기는 힘들겠죠. 


어떤 공무원분이 그러시더군요, 

이미 막기 힘들다고,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런 논리라면 

4.19와 6.10민주항쟁은 없었을 겁니다.


저지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공무원연금개혁 반대투쟁도 

하지 않아야 할 겁니다.


공적시스템을 죽이고 

사보험 시장을 키우는 공무원연금개혁이

당사자인 공무원과의 협의 없이 

언론을 통한 홍보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하듯이


날조된 서명부를 통해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졸속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가질 수 있도록 저지해 주십시오. 


행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이익을 공유하는 소수에 의해서만 돌아갑니다.


군수님의 임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의견을 표출하는 공무원 분들이 많아지고 

거창군 공무원노조에서 이 사업에 제동을 걸어주신다면 

이 사업은 막을 수 있습니다.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